무화과 나무 이야기 2

                                     마가복음 13, 28-37                                김효태 목사

 

 

지난 주에 저는 누가복음 13장에 등장하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포도원에 고랑을 파고 거름을 주어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겠노라고 한 포도원 지기의 마음이 우리 주님의 마음이며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개개인에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사회의 구조 깊숙히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사회 구조적 선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오늘은 그 계속 이어서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

무화과 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줄을 안다.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 너희도 이런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여기 이런 일이란 앞에 등장하는 내용을 말하는데 13,14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멸망케 하는 혐오할 만한 것이 서 있지 않아야 할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13,14

로마의 황제 가이사(원래는 로마 황제의 성이었는데 이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의 성이 되었고 직함의 의미를 띄게 되었다.) 갈리굴라(A.D. 41년까지)의 동상을 세워서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게 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했습니다.

희랍인들이 섬기던 신은 인간과 명백한 한계를 지닌 신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든지 노력하면 오를 있는 경지에 있는 신들이었습니. 다시 말해 유명한 사람들은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으로 올라 있으며 영웅으로서 신들과의 교제 속으로 옮겨 있었다고 생각했습니.

역대의 위대한 로마의 황제들은 죽게 되면 신의 영역으로 옮겨갔다고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을 기리는 신전을 짓고 숭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게는 죽은 뒤에 기리고 숭배 하였는데 가이우스 갈리굴라도 그렇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빛나는 관을 쓴 자기의 모습을 동전에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그가 비록 그 전에 암살을 당해서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다른 황제들이 또다시 그같은 시도를 하면 어떻게 하나 ? 이스라엘 사람들의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멸망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서게 되지 않기를 그들은 소망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때 황제를 했던 베스파시안은 죽으면서 말했습니다.

아 슬프다 나는 분명 신이었는데,…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으로 가져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국가나 정치적 세력이 신의 위치에 스스로 오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어떤 형태의 조직이던 그 어떤 국가이든 정치인이든지 그것이 설사 교회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관장하려고 시도를 하던가 생사여탈권을 손에 실제로 쥐게 된다면 그것은 사람의 영역을 넘어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는 것입니다. 그 옛날 로마의 황제들이 성전에서 스스로 신으로서 섬김받기를 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쳔으로서 결코 이러한 행동을 찬성할 수 없으며 온몸으로 거부해 나가야 합니다.

주변으로 밀려난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외국인을 냉대하는 사회적 풍토도 크리스쳔이라면 결코 찬성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많이 가졌거나 권력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서 결코 다른이들을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힘주어 외쳐야 합니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다는 다른사람을 섬기야 한다는 말씀을 우리는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마가의 본문은증거합니다.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새 잎을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라.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표식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세상을 변화시키기 이전에 우리기 알아야 하는 것은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징조를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아직 많은 것이 미래를 향해 열려 있고 아직 많은 것이 우리 앞에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바로 그 발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미래가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전 사람이 구세계에서는 다른 민족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차 있었으니 새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 시대는 전쟁을 통한 살상이 정당화 되었으나 새 시대는 평화가 화두가 됩니다.

구 시대는 분열과 적대감을 시대 정신으로 삼았으나 새 시대는 일치와 화합을 말합니다.

구시대는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만이 있었으나 새 시대는 모두가 주권을 참되게 행사하는 시대입니다.

바로 이 새 시대가 신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시대 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외침의 시대가 새 시대 입니다.

'정말 당신은 앞으로 200년안에 사람이 본질적으로 더 나아지는 발전이 있을거라고 믿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서 알수 있듯이 이제 돋아나기 시작한 잎사귀 속에서 여름을 소망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본질적인 변화가 생겨날 것입니다.

희망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표시입니다. 희망하는 곳에 미래가 있습니다.

그 희망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한 사람이 깨어서 날카롭고 민감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아래에서 준비하고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봄이오게 하고 여름이 가게 하고 다시 가을이 오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봄을 알아차리고 여름을 대비하고 가을에 맞는 일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 사람의 일입니다.

이미 살펴본대로 우리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에 대한 질문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단지 우리의 관심이 아주 제한된 실존적인 영역에만 머물게 될 것입니다.

결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둔감하지 않으며 문제의 해결을 구조의 개선에서 찾아내어야 합니다.그 구조가 개개인의 실존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깨어서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고 열매를 맺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