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 이야기1: 희망은 있다

                                 누가복음 13, 6-9                            김효태 목사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에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의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무화과 나무는 겨울에는 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마치 죽어버린 나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봄이 되면 항상 새로운 잎이 돋아납니다. 그때문에 사람은 무화과 나무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1. 팔레스타인에서는 무화과 나무는 보통 12달 중 10개월 정도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등장하는 무화과 나무가 3년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이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포도원 지기에게 지시했습니다. 무엇때문에 땅만 낭비하느냐고 말입니다.

 주전 5세기에 기록된 아르키칼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내게 길가에 서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한 그루의 야자나무 같았다. 나무의 주인은 와서 그 나무를 잘라 버리려고 했다. 그러자 야자나무가 주인에게 말했다. 내게 1년만 시간을 더 주세요. 그리하시면 제가 주인님께 사프란을[1]선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대답했다. 불행한 자야! 너는 너의 열매도 스스로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

곧 나무는 단지 그 나무의 열매를 맺을 뿐이다. 야자나무는 야자열매, 가시덤불이 포도를 내지 못하고 엉겅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사람이 좋은행동을 하고 나쁜 사람은 나쁜 행동을 한다. 열매로 나무를 알듯이 행실로 사람을 안다.

 

그런데 이 아르키칼의 우화에서 우리는 사람의 변화와 관계해서 날카로운 통찰을 만나게 됩니다. 곧 사람은 본래 변화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역사속에서 사람들은 전쟁을 통하여 늘 다른 사람들을 죽여 왔습니다. 민족의 영웅들은 전쟁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식 동물들이 더이상 고기를 먹지 않고 풀을 먹고 살기를 바란다면 아마 어리석은 사람이라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더이상 전쟁을 통한 영웅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아마 무척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인종을 멸시하고 무시하던 억압하던 사람들이 과연 변할 수 있겠습니까?

힘을 가지기만 하면 다른이들을 억누르고 다른 생각을 가졌다 하여 제거하고 약한 사람들은 이용해 왔던 우리의 역사는 과연 변할 수 있겠습니까?

야자나무의 열매도 맺지못한 야자나무가 값비싼 샤프란 꽃을 피울 수는 없습니다. 너무도 딱 맞는 말씀이 아닙니까그래왔으니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고 나무는 나무다.

 

 2.예수께서는 그당시 팔레스타인에 널리펴졌던 이 우화를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우화의 결론과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계십니다고대 근동의 아르키칼 우화는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바탕으로 인간은 변화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당시에 널리 펴져있던 이런 염세적이고 결정론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회복과 변화에 대한 희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례요한은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고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외쳤습니다.

 이미 3년 동안 죽어 말라 버린 것처럼 보이는 나무에게도 새로질 수 있는 희망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열매를 내지 못했고 아무 도움도 못 되었던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사람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경험상 사람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무 주위에 고랑을 파고 거름을 주면 죽은 나무라도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인께 간청하는 포도원 지기의 모습처럼 주님은 사람도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이 대책없이 모든 것이 잘 될거야를 남발하는 무책임한 낙관론을 말씀하고 계신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고 날카롭고 정확한 돌이킴 곧 회개와 실천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비록 사람이 때때로 이미 죽어버린 나무토막처럼 가망이 없어 보여도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멈출 수 있고, 인종차별을 극복할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억압을 멈출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이러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걸음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제가 나무 주위에 고랑을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애절한 포도원 지기의 노력은 분명 그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겠다는 희망의 몸짓입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이 세상의 변화와 개개인의 변화를 끊임없이 문제 삼아야 합니다. 비록 때로는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믿기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회복될 것입니다.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소중합니다.

 

3. 무화과 나무 주위에 도랑을 파고 거름을 주어 그 나무가 살아날 것이라고 그래서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하던 포도원 지기의 소망을 우리의 소망으로 간직해야 합니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나무를 잘라 내려는 주인에게 포도원 지기가 말합니다.

랑을 파고 거름을 주겠노라고 말입니다. 아주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나무 자체를 바꾸거나 나무 자체에 어떤 변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새롭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포도원을 새롭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에게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사야 5,7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민족이요 주께서 아끼시고 사랑하는 나무는 유다 백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전체 사회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사회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개개인도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사회의 구조가 변해야 합니다. 아니 개개인의 변화와 사회 전체의 변화는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개인의 변화란 일시적일 뿐이고 개개인의 변화없는 사회의 변화란 근본적이지 못합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자본주의 논리가 팽배한 사회에서 개인에게만 나눔과 일치의 의무를 떠넘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살상 무기를 팔아 수입원을 늘이는 국가에서 평화와 공존의 가치가 개개인의 삶 속에서 열매맺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사회 구조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구조, 사회 각 계층의 갈등은 더 깊게 하는 구조, 힘을 가진 사람들의 특혜를 더 크게 해 주는 구조, 시민들의 자유를 더 억압하는 구조인데, 자꾸 개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개개인의 변화만을 얘기하는 이가 있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개개인이 돌이키고 반성함은 이 사회 자체의 잘못된 구조의 변혁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과 우리 개개인은 모두 변화될 수 있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개개인에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사회의 구조 깊숙히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사회 구조적 선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포도원에 고랑을 파고 거름을 주어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겠노라고 한 포도원 지기의 마음이 우리 주님의 마음이며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개인과 사회와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며 회복을 열망하며 살아갑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중 하나가 사프란이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사프란의 무게는 금의 무게와 대등한 값으로 매겨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