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으로도 희망찬 길                           

    (마태복음 8,1-13)               김효태 목사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

그렇게 이 본문은 두 가지의 치유에 대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랜 종교적 전승에 의하면 그리고 심리학적 구조에 따라서 봐도 사람은 위에 계신 하나님을 찾습니다. 산 위에, 높은 곳에그래서 종종 옛날의 교회들이 성지의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지곤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 어딘가에 자리를 틀고 계시는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구약에 보면 모세가 혼자서 백성들이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구름에 덮여 있고 번개와 천둥이 치는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것입니다. 그가 율법을 들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은 백성들이 볼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났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에 뭐라 하셨는지 전해주었는데 얼굴에 수건을 쓰고 광채를 가리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백성들이 그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내산 위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에서 내려 오셔서 옛날 산 꼭대기 위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을 완성할 새 율법을 가르치셨습니다.   

 

5,43-4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적을 미워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의 적을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그를 위해 기도하라. 너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곧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곧 어떤 새로운 것이 왔음을 알린 것입니다.) 주께서 늘 말씀하셨던 어법이 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의 내용을 풀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해를 악한 것과 선한 것 모두 위에 똑같이 떠오르게 하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 위에 비를 내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너희가 상 받을 일이 무엇이냐 그건 세리도 한다. (대단히 비판적인 말씀이다. 세리를 업신여겼던 사람들에게 세리보다 나은게 없다고 하시니...)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친절히 대한다면 너희가 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렇게 한다. 남들이 너에게 해 주길 원하는 그것을 너희는 해라. 하나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보라. 하나님의 율법을 새롭게 이해하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산꼭대기 구름이 덮여 있는 곳에 홀로 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라!!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두 가지 치유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는 나병환자를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자기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합니다. 병에 걸려 있는 한 그는 부정하므로 그는 따로 살아야 합니다. (레위기 13, 45-46)  

이렇게 병 때문에 겪는 육체적 고통과

격리되어 살아가야 하기에 겪는 정신적 고통으로 만신창이가 된 병자 하나가 얼굴을 가린 채 주님 앞에 절을 하며 낫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얼굴을 가렸고 지금 병자도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나는 광채를 가린 모세와 가려진 병자의 얼굴이 닮아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얼굴을 가렸고 병자 또한 그랬지만,     

 

여기서 가리워진 것은 동일한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자신의 얼굴을 가린 모세, 모세의 가려진 얼굴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문둥병자가 되어 사회에서 버림받고 고통 당하는 그 병자의 가려진 얼굴 뒤에도 하나님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의 병들고 일그러진 모습은 세상의 아픔과 절망 한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서있을 때도 그랬고 병자가 가리고 있을 때도 그랬고 사람들은 그 가려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산으로부터 내려오셔서 그 병자의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얼굴을 다시는 가릴 필요 없이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일그러진 사랑의  하나님의 얼굴에 다시금 생명과 미소와 피어나게 하셨습니다.

주님,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당신은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병자의 간절한 요청에 예수님은 자신 스스로 직접 손을 뻗어 그를 만졌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내가 원한다. 그러니 깨끗해져라. 

이것은 옛 율법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자를 만졌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 때문에 율법에 의해서 스스로가 부정한 자가 되었습니다.

병을 옮기는 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위는 동시에 새 율법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한다. 내가 원한다. 나아라. 내가 원한다. 나아라. 깨끗해져라.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했더니 빛이 생겼더라 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신적인 창조의 행위가 나타나는 말씀이요 어법입니다.

 

그것은 단지 말일 뿐이야.

리는 가끔 그렇게 말하며 말 자체를 행위와 구별해서 행위보다 더 의미가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 속에는 미래가 녹아있습니다. 왜냐면 종종 일상에서 말은 그가 지시하고 언급한 것을 이룹니다.

 

당신 나와 결혼 할래요? . 그렇게 할래요? .                     

이것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말이요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말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건강이 나빠졌음을 선고 받았을 때, 그가 비록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당사자는 법적인 선고를 받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말은 미래를 변화시킵니다. 길을 바꿉니다.

말은 항상 미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가 목요일에 올게. 이것은 말이지요. 하지만 월요일과 화요일과 수요일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는 말입니다. 그것은 삶과 희망을 담은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로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낯선 이방인이요, 미움을 받는 군인이며 자신의 수하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을 하면 그대로 그를 위해서 해야 하는 지위와 힘을 가진 자였습니다. 자기의 수하에 있는 자가 그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수하의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고자 했습니다. 수하의 사람을 고쳐주는 것은 자신의 능력 밖 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치료하시는 선생님을 곧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고 싶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무엇인가 그를 위해 하실 수 있었을 텐데.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수님을 백부장은 만류합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지 말씀만 하십시오. 그것으로 족합니다. 당신의 한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그는 로마인이었고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 당시 로마사람들처럼 다양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신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유대인의 신을 알고 믿었을리 없으나

예수라고 불리는 이 유대인 사나이는 말하고 그것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를 믿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그의 말이 그대로 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 말 속에서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집으로 모셔 들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감당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너무 벅차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한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한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이면 그에게는 정말 충분했습니다.

가라 네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 그 일이 너에게 이루어 질 것이다.

이런 확증을 얻은 그는 자신의 집으로 여정을 떠납니다.

 

다른 것 아무것도 없이 단지 예수의 말 한마디만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는 희망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가 집으로 갔을 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옳았는지... 그 사람의 말대로 되었는지...

그는  길 가는 동안 평온한 가운데 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길을 재촉하며 자신의 종이 나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젖었을 것입니다아니, 어쩌면 두려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완전히 이루어졌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달려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집으로 갔습니다. 단지 말 한 마디만을 지니고 말입니다.

백부장의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길이 바로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백부장이 말씀 하나만 가지고 다시 집으로 갔던 그 길이 바로 우리가 걷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는 대로 너에게 이루어 질 것이다. 내가 원한다. 낳거라.

내가 너의 부정을 너에게서 가져오겠다. 그리고 네가 깨끗해 졌음을 보아라. 그리고 다른 자에게도 네가 건강해졌음을 보이라. 내가 원한다.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당신은 나를 건강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하시며 구원과 치유를 베푸실 수 있나이다. 그리고 나의 고통을 나에게서 가져가실 수 있나이다.”

우리의 주님의 대답은 하나님은 원하신다. 하나님은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없애 주시길 원하십니다.

 

세상의 아픔이 거두어지길 원하십니다. 잘못된 법의 집행으로 억울하게 죽어가는 생명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한쪽에서는 굶어 죽고 다른 한쪽에서는 남아서 버리고 하는 분배의 불균형이 없어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진정 원하십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원하신다.

 

그 한 말씀을 가지고 이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니다. 주를 믿으며, 주를 따라 행하며. 우리는 길을 갑니다.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믿기에 우리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우리의 힘이 닿는 곳까지, 서로 도우며 서로 연대하기로 다짐하며 길을 갑니다.     주께서 하신 한 말씀이 삶을 구하며 아픔을 치유한다고 믿으며 우리들 또한 진실한 말을 가지고 희망을 말하며 집으로 향한 길을 갑니다.

그 길은 먼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의 시간 속에서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길을 갑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신 희망과 용기로 집으로 향하는 그 길을 끊임없이 갑니다. 우리 함께 그 길을 갑니다. 이 길 위에서 한 없는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성삼의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