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파한(Isfahan)에서 다시 맞이한 새해!

모슬렘 국가에서 2주간이나 체류하기는 처음이다. 이란은 IAEA의 특별 사찰 대상이기 때문에 비자를 주는데 까다롭고 별로 우호적이지도 않다. 항상 그렇지는 않다고 하지만 공항에서 입국부터 외국인을 따로 취급하는 차등 대우를 받았다. 이란인이 먼저 입국 심사를 받고 그 다음에 외국인에 대한 입국 심사가 있었으니, 시작부터 여행이 삐꺽거리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비엔나공항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포스코 건설의 한 직원은 우리보다 더 호된 심사를 받는지 우리가 짐을 찾고 돈을 바꾸기까지 통과가 안 된 것 같다. 호텔에서도 한국 상사 직원들을 보았듯이 한국인의 기업과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거리에서 보이는 LG 광고와 현대와 기아 차들을 보면 한국과 상당한 교역 관계가 있음직하다.

잠시 머물렀던 테헤란시는 시가지가 깨끗하고 비교적 잘 정돈된 것 같았지만, 매연은 세계의 여느 개발도상국가의 대도시처럼 나의 눈과 코를 자극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란 전체가 고도 1000m이상의 고원지대에 있기 때문에 테헤란의 북쪽 바로 앞에 눈 덮인 산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수도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스키 리조트도 여러 개 있다고 하며, 해발 3000m의 높은 산이기에 여름에도 꼭대기에 눈이 있다고 한다. 테헤란 구경은 다음에 시간이 충분히 나면 하기로 하고, 우리는 목적지인 이스파한으로 떠났다. 이스파한은 고대로부터 그 지방의 중심 도시였으며, 특히 1072년 Mahmud-a Ghaznavi 왕이 이스파한을 다시 수도로 정한 후 700년 동안 이란 문화의 꽃을 피운 중심지였다.

이란, 즉 페르시아의 역사를 잠시만 살펴보아도 우리는 이란의 역사가 심상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이 있기까지 이란은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의 중심부를 흐르는 인더스 강에서부터 서쪽으로 이집트와 터키 지방을 지배했던 대제국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이 있은 후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고, 국세가 주변 국가를 상대하기도 때로는 벅찼으며, 652년 새롭게 부상한 이슬람을 기치로 한 아랍 세력에 무릎을 꿇고, 200년 가까운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랍의 선진 문화문명과 과학을 받아들이고 중흥을 꾀하기에 이른다. 아랍 세력에 의한 아랍화는 막을 수 있었지만, 이슬람 종교와 문화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랍 이슬람권에 속하지만, 실제 아랍 민족과 문화권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6세기에 성장하기 시작한 아랍세력은 그리스의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과학과 철학을 도입하여 이란에게 전수해 준 것이다. 아랍 문화를 받아들여 나라의 세력을 키운 12세기부터는 동방의 침략에 시달리게 된다. 13세기의 징기스칸의 몽골제국과 티무르제국의 침략으로 이란의 인구는 당시 250만에서 25만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말에서 나온 ‘이란’은 서쪽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동쪽의 중국과 인도 문명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교량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어 항상 강대국의 침략에 시달려 온 것이다. 하지만 또한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과 부요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연결하는 길목에서 교역을 통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부유한 페르시아 상인의 이미지를 항상 가지고 있다.

이스파한은 ‘네스페 자한 (Nesf-e-Jahan)'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스파한에 가면 세계의 반을 볼 수 있다는 “세계의 절반”이라는 뜻이다. 700년간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고유의 페르시아 문명과 진보한 아랍 문화를 융합하여 이슬람 문화의 꽃을 피운 것이다. 이스파한은 당시에 그만큼 국제 도시 역할을 하였던 자취가 아직도 남아있다. 바로 이 도시 안에 있는 기독교도가 중심이 된 아르메니아인 지역과 유대인 구역이 아직도 존재한다, 유대인이 이스라엘 국가 밖에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이란이라고 하니 매우 흥미롭다. 지금은 이란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특히 이란의 새해인 춘분 때가 되면 테헤란의 사람들이 한국의 설 명절처럼 대도시를 떠나 이스파한이나 시라즈와 같은 고대 문화의 명소 또는 북쪽 카스피 연안의 휴양지로 모이기 때문에 테헤란의 인구는 절반으로 줄고, 지방의 살기 좋은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리와 광장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이고, 호텔 값도 2배로 치솟는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는 공무로 출장을 와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란의 문명은 아랍 문화의 영양을 받은 후에, 유럽의 암흑시대 동안 근대 대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10세기의 크와리즈미 (Khwarizmi)를 배출하는 등 수학과 건축, 예술에 큰 발전을 보여 왔다. 이러한 문화는 인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으며, 그래서 페르시아의 예술이 인도의 타지마할 건축에서 정점이 이르게 된다. 1632년 인도 무굴제국의 샤아 자한 왕은 39세에 요절한 사랑하는 뭄타즈 마할 왕비를 위해 페르시아에서 2만명의 특별 석공을 데려와 페르시아 라하우리(Ustad Ahmad Lahauri)의 총감독 아래 22년 동안 타지마할을 건축하여, 지금 세계의 7대 불가사의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지마할을 짓고 난 후 자한 왕은 그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다른 곳에서 또다시 짓지 못하도록 수많은 석공들의 손목을 잘랐다는 애화가 있으며, 또한 자신을 위해 검은 대리석으로 타지마할과 똑같은 건축물을 세우려고 계획했다가 과도한 재정낭비와 폭정에 반기를 든 아들의 쿠데타에 의해 연금 상태의 세월 속에 일생을 마치고 타지마할의 왕비 무덤 옆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이스파한에는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으로 지정한 14세기에 만들어진 나그쉐 자한 광장 (Naghsh-e-jahan square)에는 Abbasi Jame Mosque, Sheikh Lotfollah Mosque, Ali-Qapu Palace가 한데 어울려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저녁마다 많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제공되고 있다. 당시에 또한 도심을 통과하고 있는 이란 고원에 생명을 준다는 자얀데 강 위에 Allah Verdikhan Bridge (Si-o-Se-Pol; 33 sluice bridge)와 Khaju (Royal) Bridge 등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었는데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다리이며, 역시 시민들에게 휴식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곳곳에 많은 공원들이 있어 시민들은 저녁때가 되면 몰려나와 공원에 앉아 가족들과 식사를 나누는 장면들이 이채롭다. 이외에도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1300년전 부터 공사를 시작했다는 세계 이슬람 사원 중에서도 규모를 자랑하는 Atigh (Antique) Jame Mosque가 역사적 볼거리를 제공하며, 부근에는 초기 이슬람 문화 전후에 세워진 여러 개의 Minaret이 우뚝 솟아 있어 고대 건축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관광객이 몰리는 왕궁으로는 나그쉐 자한 광장에 있는 Ali Qapu 궁전과 Chehel Sotoon 궁전이 옛 영화를 자랑하고 있어 지나쳐갈 수 없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공교롭게도 이스파한에 도착한 다음 날이 이란의 달력으로 새해이다. 호텔은 잘 차려입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으며, 새해맞이 치장을 손님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꾸민 것 같다. 특이한 것은 꽃으로 장식한 것과 호텔 로비의 중안에 새해맞이 차례상이 차려진 것이다. 차례상은 가정이나 상점 어느 곳에나 차려지며, 차례상의 중앙에 거울과 코란이나 바이블이 있고, 어항에 든 금붕어와 촛불, 꽃 등이 양쪽에 자리 잡고, 페르시아어 S로 시작되는 7가지 기본적인 음식이 차려진다고 한다. 7가지 음식 중에는 사과, 식초, 마늘, 야생 올리브, 밀죽(porridge), 푸른 새싹(green sprout), 달걀 등이 있다고 한다. 13일 동안 집안 어른들, 친지와 친구를 방문하는데, 방문객들을 위해 차와 마른 과일, 쿠키, 캔디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준비한 새 돈을 어린아이들에게 준다는 것이 한국의 전통 설 풍속과 대단히 흡사하다. 또한 이날을 준비하기 위해 집안 청소를 하는 것이 전통이며, 새롭게 페인트칠을 하거나, 적어도 깨끗하게 먼지를 제거하고 유리창을 깨끗이 닦고, 더러워진 카펫트를 빨거나 먼지를 털어낸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고대 페르시아의 3천년이나 오래된 것으로, 태양력으로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 하며, 어두운 것은 물러가고 밝고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것을 기념한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이슬람의 전통이 나니라,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악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란의 새해는 고대 페르시아에 속하였던 지역인 아프카니스탄과 우즈베크스탄, 카자크스탄 등에서 지금 지켜지고 있으며, 오히려 우즈베크스탄이나 이란의 산간 지방에서 고대 풍습에 따라 축제의 분위기로 즐긴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씨름과 말을 타고 편을 나누어 경기를 한다고 한다. 호텔에서 투숙객들을 위해 마련한 새해 파티에 이란의 민속 노래들이 소개되었고, 대행 스크린에는 간간히 반갑게도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고 있어, 이곳 이란에서도 ‘대장금’ 연속극이 한때 최고 인기를 끌었다고 사실을 반영해 주고 있으며, 지금도 주몽을 한창 방영중이라 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해피 노루즈 (Norouz or Nowruz)" 라고 인사를 하면, 그들은 이색적인 동양인인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자주 묻는다. 한국이라 대답하면, 부러운 듯 다시 쳐다보기도 한다. 삼성, LG, 현대, 기아 등 한국 브랜드와 한류 방송의 탓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노루즈’는 페르시아어로 새날을 뜻한다고 한다.

이란은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1979년 회교혁명 이래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이맘 (회교 시아파 최고 지도자)이며, 정치와 사회의 모든 것이 종교의 틀 안에서 행하여져야 한다. 그들은 이란 회교혁명을 불란서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혁명과 같이 세계 3대 혁명으로 높이 간주하려고 한다. 종교적인 축제 외에 다른 축제는 국가에서 장려하지 않기 때문에 노루즈 축제의 분위기는 다른 나라보다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불만이 이란 사회 속에 흐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종교적 영향으로 남녀의 유별은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한 예로 버스는 2개의 문이 있어 앞쪽에는 남자만 앉고, 여자는 뒷문으로 타서 뒤쪽에 앉게 되어있다. 방송에서는 철저하게 여인들이 전통 차도르를 쓰고 있지만, 길거리에서 보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스카프로 대신하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들은 청바지를 선호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테헤란에서 방영되는 Press TV가 완전히 영어로 방송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뉴욕, LA, 런던 등지에 지부를 두고 세계의 뉴스를 전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도 영어 교육 문제로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해외동포와 손잡고 그러한 국내에 영어 TV방송국을 세워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안준호/200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