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안 준호날짜: 07/02/2006

지난번의 경험(?)을 살려서, 그리고 도회지가 아닌 시골에서 2주 동안 지내야 하는 여행 스케줄 때문에 이번에는 비상 식량을 조금 준비했다. 컵라면 15개와 캐나다에서 급히 공수해 온 말린 소고기를 유사시를 대비 준비하였으며, 두 번의 주말을 이용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여행길에 올랐다.
뉴델리에 도착한 날이 금요일이었으며 다음날 타고 내려갈 기차표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아침 일찍 차를 대절해서 200km 떨어진 아그라에 있는 타지 마할을 관광하기로 같이 간 인도네시아 동료와 결정했다. 말이 국도이지, 4차선 도로 곳곳에 릭샤들과 소떼들이 교통을 방해해 가는데만 무려 4시간이 걸려 왕복 10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고된 여행이었다. 중앙 분리대가 있어도 가끔 반대 방향에서 달려드는 트럭터와 자전거, 릭샤로 인해 급정거를 해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고 어디로 갈지 예측키 어려운 소들의 돌출 행동으로 위험 부담이 큰 여행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사랑으로 표현되었다는 타지 마할은 여행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었다.
1630년 무굴제국의 샤아 자한 황제가 39세에 요절한 사랑하는 뭄타즈 마할 왕비를 위해, 페르시아에서 2만명의 특별 석공을 데려다가 22년간의 긴 세월 동안 지은 타지 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정평이 나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중의 하나인 흰 대리석을 바탕으로 중앙 묘소를 짓고, 붉은 사암을 주축으로 흰 대리석을 섞어서 양옆의 모스크와 왕실의 숙소, 그리고 앞의 정문을 세워 아름다운 대조를 엮어내며, 그 안에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최고 걸작 건축물이다. 묘소라기 보다는 궁전으로 불리는 중앙 건물은 멀리서 보면 흰 대리석 건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흰 대리석 안에 각색 보석 돌로 아름다운 꽃 문양을 조각을 넣었고, 그 가장자리에 검은 대리석으로 코란의 구절들을 각인해 넣은 아주 정교한 건축물이며, 타지마할은 아침 햇살에는 황금빛을 내고 저녁놀에는 붉은 핑크빛의 우아한 색조를 띄며, 낮에는 구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공해로 인한 퇴색과 산화를 막기 위해 주변 5km 반경에는 전기 자동차와 인력거만 다니게 하고 있으며, 아그라 주변에 공장을 세우지 못하도록 인도 정부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는 타지 마할이 완공된 지 30년 뒤 왕은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 강 건너편에 검은 색의 대리석으로 대칭 되는 자신의 똑같은 묘소를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공사비로 국고를 낭비하는 왕을 보고 황태자는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감금하고 말았다. 몇 년 후 감옥에서 생을 마친 왕은 자신의 묘소를 갖기는커녕, 타지 마할의 중앙에 자리잡은 왕비의 묘소 왼쪽에 자리를 빌어 자신의 묘소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기차 여행을 하지 않고는 인도 여행을 했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3등칸을 타야 진짜 인도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지만, 그렇게는 못하고 에어컨 시절이 되어있는 1등칸을 타게 되었다. 기차에 대한 첫 인상은 아직도 한국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완행열차 수준만도 못했다. 4인 전용 1등실 컴파트먼트이건만, 실내의 분위기는 어디에도 손길이 가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각 역마다 서야 하므로 속도도 느려서 450킬로를 달리는데 무려 8시간이 소요되었다. 한국도 수십년 전에는 그랬지만, 역 주변은 어느 나라고 가난한자들이 모여 살아 더러운 것 같다. 쓰레기 더미가 산재해 있고, 판자 집이 아닌 지푸라기 집들이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하루에 10루피로 살아간다는 그들의 삶은 거지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이른 아침 인적이 드문 곳에 남녀노소를 불문 엉덩이를 까고 뒤를 보는 그들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삶은 비교해 본다. 50년대의 한국을 생각해 보며 문득 독재자 박정희 장군에게 감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철도는 인도인들의 동맥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연간 수송인원이 2억명이 넘고 2천개의 역에 종사하는 철도 직원이 160만이라고 하니 그 규모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매일 백만명 상당의 사람과 수십만톤의 화물을 나르기 위해 오늘도 인도의 열차는 달리고 있다. 내가 탔던 기차도 이십여 차량을 달고 어렵게 숨차게 달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철도역과 프랫홈은 얼마나 붐비겠는가! 그래서 짐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쿨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인도에서 기차여행을 하기가 어렵다. 공식 가격은 짐 한 개당 30루피이지만 외국인인 우리에게 짐당 100루피를 요구한다. 그래서 흥정 끝에 짐 5개에 350루피로 확정하자 30킬로에 가까운 짐가방을 사뿐히 머리에 이고 사람사이를 달려나가며, 표시도 잘되어 있지 않는 열차를 정확히 찾아내어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아마 우리가 건내준 7불 상당의 350루피는 그들 가족의 하루 생활비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2시간 후 이마에 빨간 꿈꿈을 찍어 바른 어느 인도 부자가 앞좌석에 탔는데, 10여개의 작은 짐들을 나르는 가족들과 하인들을 대동했고, 옆자리까지 표를 산 것인지는 모르지만 깨끗한 베개를 두 개나 준비하여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우리들 앞에 벌렁 드러누워 기차 여행을 즐기는 듯 했다. 그래도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으로 꺼내어 어디론가 자주 연락을 취하곤 했다. 차장이 왔어도 그는 누운 채 차표를 건넸다. 그의 모습 속에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인도 음식으로 말미암아, 일의 시작 첫날부터 배탈을 만난 나는 계속 점심은 거르며 (뱃살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저녁은 컵라면으로 때웠다. 다음 주말 여행은 한국인에게 특히 유명한 카쥬라호 사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가야할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사실 공적 목적지에서 약 6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쥬라호를 가기가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는 없을 지도 모를 기회로 생각하고 길을 떠났다. 간간이 외길 도로와 곳곳에 푹푹 파인 도로는 평균 시속 50km가 고작이며, 마주오는 차가 있으면 사고의 위험도 있었다. 실제 우리 앞에 가던 짐을 초과해서 실은 화물차가 푹파진 아스팔트길을 잠시 벗어나다 전복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카쥬라호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하고 어차피 떠난 여행이지만, 이러한 사고를 목격하고 주말 여행을 떠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이 여행길은 실제 시골길을 달려가며 인도의 속 모습을 보는 듯 자세히 들여다보는 듯 했다. 새벽 5시에 출발했건만,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이미 해가 지고 있어 구경은 다음날로 미루고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이른 아침 서둘러 우리는 카쥬라호 사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모든 사원들은 아침 햇살을 맞이하도록 동쪽을 향해 지어졌기 때문에 아침 구경이 더 제격이다. 인도 힌두교에서는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힌두교의 신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며, 인도인들에게 삶이 있고 종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슬림들에게 정복당하기 수 백년 전인 서기 1000년경에 찬델라 왕국에 의해 건설된 88개의 사원 중에 현재 22개의 사원이 복원되어 그 자취를 남기고 있어 또다른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다행히 산들과 우거진 수풀 속에 자리잡은 이곳은 무슬림의 신상 파괴 위험을 피할 수 있었으나 800년간의 무슬림의 지배 아래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 가고 만 것을, 1838년 그곳을 지나던 영국군 장교에 의해 탐사에 의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사원도 역시 인도 어느 곳에나 볼 수 있는, 인도의 만신들 중에 주신인 비슈누, 락슈미, 시바, 파바티 등을 섬기는 신전들이었다. 인도의 신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인도 조각상에 보이는 여인들은 곡선미가 과장된 에로틱한 모습으로 커다란 궁둥이와 공처럼 튀어나온 가슴이 뭇남성들은 물론 여성들의 시선까지 끌리게 만든다. 어떤 신전 입구의 여인석상들은 드나드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가슴과 배가 반들반들 윤이 나 있기도 했다. 카쥬라호 신전이 특별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다른 신전들에는 없는, ‘카마 수트라’에나 나올 법한 에로틱한 남녀간의 은밀한 장면들이 사원의 외벽 곳곳에 적나라하게 조각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기에 세계의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찾아오는 곳이다. 일반인들에게 관람이 허락된 신전 중에, 한 신전은 직경 1m가 넘는 검붉은 돌로 깎아 만든 시바 신의 남근(男根, 시바 링감)을 모시고 있었다, 남근 숭배 사상은 인도의 또다른 특색 중의 하나이다. 다산과 특히 아들을 기원하는 여인네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시바 신은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의 소유자이며, 8만4천가지의 다양한 체위를 고안했는데, 숭배자들에게 알려진 체위는 십분의 일정도라고 한다. 비공식 세계 1위의 인구(12억 이상)를 자랑하는 인도에게 걸맞은 이야기이다.
인도인들은 삶의 목표에는 개인적 사회적 종교적 의무인 다르마(Dharma)와, 성적 욕구를 포함한 인생을 즐기는 카마(Kama), 가족을 위해 부와 번영을 추구하는 아르타(Artha), 그리고 구원의 길을 걷는 목샤(Moksha) 이 네가지가 있는데, 나이에 따라 대개 25세까지는 배움과 준비의 기간으로, 25세에서 50세까지는 위의 처음 세가지 목표를 충실히 수행하는 기간이며, 50세가 되면 카마와 아르타는 접어두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으로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다르마와 목샤의 길에 접어들어야 하며. 그리고 75세가 넘으면, 아예 집을 떠나 숲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목샤에만 전념하며 우리나라의 고려장처럼 홀로 숲 속에서 삶을 마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왕 신들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도의 신들과 사상을 잠시 소개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인도에는 주신이 셋 있는데, 가장 위의 신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로 네 개의 머리와 네 팔을 가지고 있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고 인류의 운명을 주관하며 힌두교의 경전인 4개의 베다도 그의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브라흐마 신 숭배는 6세기 이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섬기는 사원이 인도 전역에 두세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최고의 위치를 다음 위 격인 ‘비슈누’ 신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다음은 보존의 신인 비슈누 신인데 대개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코브라를 동반하고 있다. 비슈누는 이 세상을 방문할 때마다 환생하여 그 모습이 달라지는데, 지금까지 아홉번 환생하였고 그의 마지막 환생이 부처라고 한다. 일곱 번째 환생이 크리슈나 신인데 푸른 얼굴을 한 영원한 젊은 소년 같은 신은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이다. 비슈누의 아직도 열번 째 마지막 환생이 남아 있는데, 세상이 타락되어 마지막이 될 때 구원자로 오는 칼키 신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세 개의 눈을 가졌으며 삼지창을 들고 있는 ‘시바’ 신인데 그는 죽음, 파괴, 선악의 이중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두 눈섭 사이에 세로로 있는 세 번째 눈은 보통 감겨져 있는데, 파괴의 일을 행할 때는 부릅뜬다고 한다. 특히 그의 남성 심볼은 많은 신전의 한 가운데 수직으로 세워져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시바 신은 크리슈나 다음으로 가장 널리 숭배되고 있다.
그리고 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 시바의 아내들인 ‘두르가’(‘사티’라고도 불리움), ‘파바티’, 크리슈나의 연인 ‘라다’ 등이 주요 여신이며, 이들에게서 난 자식들이 모든 신이 되는 셈이다. 일설에는 대략 3억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신들은 가끔 푸른 색을 띄거나, 여러 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때로는 코끼리, 맷돼지, 원숭이 등 동물의 머리를 가진 신들도 많다. 인도인들은 지방에 따라, 그리고 식구들 간에도 각자 믿는 신들이 다르다고 한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신들을 선택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더 많은 신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신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비슈누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아마도 거듭되는 그의 환생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죽음의 끝에 또다른 삶이 이어져 있고 그 삶의 끝에 또 다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윤회 사상은 카스트로 인한 불평등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며, 전생을 통해서 이미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말하는 카르마(業)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다르마)를 충실히 이행하면 카르마가 좋아진다고 윤회사상은 유혹한다. 죽음과 환생의 끝없는 순환인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인데, 자신의 혼의 근원인 우주와의 일치 상태를 말한다. 수많은 윤회의 끝에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에 해탈의 길이 ‘맨발로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되어 있으니 사실상 해탈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반면, 기독교는 윤회를 믿지 않고 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 각자에게 준 진정한 자신이며 (육신은 혼이 존재하는 자신의 겉껍질이며 진정한 자아가 아니다), 예수를 통한 구원 후에, 영원한 구원의 삶이 천국에서 있다고 가르친다. 어떤 종교이든 죽음 후의 삶인 구원은 진정 공통된 인간의 최종 목표인 것 같다. (2003년10월)